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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욕망하는 자를 좀먹는 핏빛 광기 <맥베스>


충심으로 가득한 스코틀랜드 최고의 전사 맥베스. 

그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오는 길에 세 마녀로부터 왕좌에 오를 것이라는 예연을 듣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맥베스의 아내는 그의 귓가에 탐욕의 달콤한 속삭임을 불어놓고, 정의와 야망 사이에서 고뇌하던 맥베스는 결국 왕좌를 차지하기로 결심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

셰익스피어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담은 작품들은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다양한 2차창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5년에 영화화된 <맥베스>는 고전작품을 그대로 고증하는데에 중점을 뒀다고 한다. 때문에 재해석이기보다는 영화로 만나는 희곡 <맥베스> 느낌이다.

영화는 탐욕에 휩싸인 '맥베스'의 고뇌와 혼란, 그리고 광기와 파멸을 그의 처절한 대사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파랗고 붉은, 강렬한 색감의 대비와 정적이면서도 묵직한 연출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더욱 강렬하게 몰입하게 만든다.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을 처음 접했을땐

당시 희곡이 어떤것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봐서 장황하고 긴 대사에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이 있었다.

다행히 알고봐서일까, 대사로 채워진 영화가 어색하진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강렬하면서도 먹먹한 이미지들과 그보다 더 강렬한 인물들의 대사가 묵직하게 와닿았다.



욕망에 빠진 한 인간이 광기에 휩싸이고 결국 파멸을 맞이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맥베스>는 '탐욕의 부질없음'을 말한다.


그러나 21세기 배신과 음모가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있어서일까. 적어도 400년 전 작품 속 한 남자의 고뇌는 그가 한짓에 비해 너무 깊어보였다.

(셰익스피어를 내 수준으로 끌어내린것같아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 말이 있다.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 수 만명을 죽이면 영웅. 또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

그는 그냥 거사를 치루기엔 깜냥이 되지 못했던, 너무 착했던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죄도 없는 기존의 왕을 죽이고 왕좌를 노렸다는 점에서 그가 욕망에 넘어가고, 타락했다는 뜻이 될 수도 있지만

광기에 물들기 전에 맥베스는 의인이라 칭해지는 자였고, 기존의 왕은 반란의 위협을 막을 힘이 없는 자였다.

결국 중요한건 맥베스가 왕이 된 다음, 그의 행동이었지만 그는 광기에 사로잡혀 점차 미쳐갈뿐이다.



"나쁜 일이라면 왜 진실을 선보임으로써 내 성공을 약조하겠는가? 

만일 좋은 일이라면 왜 머리칼이 곤두서고 심장이 갈빗대를 두드릴정도로 끔찍한 제안으로 날 끌어들이겠는가.

현재의 불안은 상상의 공포보다 덜 하니 운명이 날 왕으로 삼는다면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내게 왕관을 씌우리라."


<맥베스>를 보다보면 '운명'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된다. 운명은 정해지는 걸까, 만들어나가는 걸까.

적어도 맥베스는 운명이라 칭해진 울타리 안을 결국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운명을 벗어나려 한 행동도 결국 운명이란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예언을 한 세 마녀는 실제로 존재하거나 유령이 아니고 맥베스 내부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기회 앞에서 고뇌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 마녀라는 존재를 만들정도로 욕망했고,

마녀를 앞으로 나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은 것 같다.



"오너라 살의의 악령들아. 내 여자다움을 가져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인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다오.

이 젖가슴을 젖 대신 쓸개즙으로 채워라. 살인의 정령들아.

너희들은 뵈지 않는 형체로 자연의 악행을 거들지 않느냐.


오라. 짙은 밤아.

칠흑같은 지옥의 연기로 네 몸을 감싸 내 단도가 낸 상처가 보이지 않게 하라. 

어둠의 장막 사이로 엿보던 하늘이 멈추라 울부짖지 못하게.


어서 돌아오세요. 제 기운을 귀에 불어넣고

제 대담한 혀로 왕관을 막는 자들을 모두 벌할 테니."


맥베스만큼이나 강렬한 캐릭터인 '레이디 맥베스' 

그녀는 성품이 착하고 인정이 많은 맥베스를 탐욕의 길로 유혹하는 여자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레이디 맥베스를 단순히 그런 시각으로만 보기에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새롭게 해석될 여지도 많은 것 같았다.


그녀를 모티브로 하여 2016년에는 <레이디 맥베스>라는 영화가 개봉했는데,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시대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금기를 깨고 욕망을 따르는 캐릭터다. 

어쨋든 레이디맥베스를 조명해보려는 시도가 있다는 것에 다행스런 기분이었지만 좀 더 많은 시도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 못지않은, 아니 더 큰 야망을 가진 인물이다. 

그녀는 점차 무너져가는 맥베스를 다그치는 카리스마를 발휘하기도 하고, 

맥베스가 영주의 가족을 해칠때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정도로 기준이 있는 인물이다. 맥베스보다도 깜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시대상 어쩔 수 없이 여자의 몸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파멸로 향해 가는 맥베스를 막지 못하고 눈을 감을 뿐이다.


이런 그녀를 킹메이커로 조명하는, 또는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남편과는 달리 다른 길을 가게되는 갈래가 생긴다면,

그녀가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세계관으로 재해석 한다면 정말 매력적인 컨텐츠 소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다.

(마리옹 꼬띠아르의 신들린 연기에 반해서인가?)



영화가 배우들의 대사로 꽉 채워지는 만큼 두 주연배우들의 연기도 <맥베스>를 보는 큰 즐거움이었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욕망에 무릎꿇은 인간이 느끼는 죄악감과 이를 통해 점차 무너지는 모습을 온몸을 통해 보여주었다.

장황하고 긴 대사들도 강렬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없었고, 그의 눈을 보다보면 상처받은 영혼이 보이는것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리옹 꼬띠아르'도 신들린 연기력을 보여줬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처음봤을때는 아쉬운 내용 때문에 그녀의 연기조차 내게는 별로라는 선입견이 생겨서

이후로 호평을 받아도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정말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새벽감성에 맞는 영화를 찾다 보게된 영화였는데 정말 딱 그 시간대에 맞는 영화여서 푹 빠져서 보게 된 <맥베스>.

살짝 지루하기도 했지만 ㅎㅎ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접하는 재미도 있었고 두 주연의 신들린 연기와 심오한 대사들도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탐욕하는 자를 좀먹는 핏빛 광기를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