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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모두까기인형의 정치 풍자극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혹은 내가 어떻게 근심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가


블랙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적극추천해서 보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제목 만큼이나 모순적인 영화는 핵전쟁이라는 위기 앞에서도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행동을 일삼는 인물들을 통해 

현실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실실 웃다가도 그 날카롭고 예리한 풍자에 순간순간 흠칫했었는데,

특히 대한민국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면 수뇌부라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영화 그대로 였을 것 같아, 혈압이 오르기도 했다.



줄거리


미 공군의 잭 리퍼 장군은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인의 '신성한 혈통'을 오염시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핵폭격기를 출격시킨다.

미국 대통령은 절대절명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자문회를 소집하지만 벅 장군은 오히려 전쟁을 주장하고, 소련과의 대화 시도는 어렵기만 하다.

게다가 소련 대사는 만일 소련이 핵공격을 당한다면 자동반사 프로그램인 '운명의 날'이 발동되어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이 파멸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핵 전문가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는 대통령의 자문요구에 핵무기에 대응할 수 없다고 말하며 상황은 점점 악화되는데...

과연 폭격기는 제 시간에 제거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지구는 운명의 날을 맞이할 것인가.


64년에 나와 개봉한지 오십 년이 넘어가는 영화가 당시 시대를 풍자했음에도 지금까지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건 

영화가 비꼰 것들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인 것 같아 씁쓸함이 든다.


한편 지금봐도 놀라운 영화가 개봉당시엔 얼마나 충격적일지 상상도 못하겠다.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소련과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대립으로 갈등과 긴장이 팽배하던 냉전시대.

정말 뭐 하나만 삐끗하면 그대로 지구멸망이 코앞인 상황에서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지만 한껏 희화화한 영화가 개봉한거다.

'스탠리 큐브릭'이 어째서 거장이라 칭송받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 각하, 은신처를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됩니다!"(광산객도 전력 격차를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 직역)

("Mr, President, we must not allow a Mine shaft gap!")


찾아보니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훌륭한 업적이 있으나 전쟁을 찬양했던 실제 인물들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한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을 위해 소련 보다 핵무기 보유가 적은, 격차가 존재한다고 한 거짓선전을 따와 영화에선 '격차' 드립이 등장하기도 한다.

가끔은 현실이 코미디이기 때문에 그대로 옮겨와 낱낱이 담기만 해도 비판적인 영화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제목은 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일까?


영화를 보고나서 제일크게 궁금했던 점이다. 

사실상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영화가 시작한지 50분이 넘어서야 제대로 등장하고, 분량도 크지 않다.

소련의 '운명의 날'장치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지 자문을 얻으면서 처음 등장하고, 핵이 터지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말하며 마지막에 다시 등장한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병 때문에 멋대로 움직이는 팔과 특이한 말투로 임팩트 있기는 하지만, 비중없는(?) 캐릭터의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고 제목으로 삼았을까?


곰곰히 생각보니, 이 인물자체가 영화에 나온 멍청이들을 대표하기 때문인듯하다.

인간의 '이성'을 대표하는 직업군인 과학자이지만 핵무기의 심각성에 무지하고 옹호하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누군가, 전쟁을 말하는 사람은 실제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한 말처럼 그는 핵이 터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헛된 소리를 늘어놓는다.

스트레인지 + 러브 라는 모순된 그의 이름자체가 영화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내가 어떻게 근심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가(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라는 영화제목과 이어져서

인류가 폭탄을 사랑하는 것이 스트레인지 러브, 즉 영화처럼 우스꽝스러운 일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기도 했다.


영화에 핵무기를 막으려 모인 수뇌부들의 고군분투가 사실은 탁상공론일 뿐이고, 이런 멍청한 짓거리를 일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감독이 말하는 것 같았다.




전쟁은 남자의 얼굴? 전쟁이란 섹슈얼리티


영화를 보면서 또 하나 인상깊었던 것은 핵무기, 전쟁 등이 '남성'으로 상징되고 성행위가 떠오르는 연출이 많았다는 점이다.


사건의 발단인 잭 리퍼 장군은 섹스 도중 무력감을 느끼고 이때 처음으로 공산당 음모론에 빠져든다. 자신이 아닌 외부로 화살을 돌린것이다.

영화의 맨 처음에는 비행기 두대가 주유를 위해 연결되어 등장하는데 나오는 노래나 연출이 대놓고 베드씬이 떠오르게 한다.(실제로 의도했다고 한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공군이 폭탄과 함께 떨어지는 씬에서, 그는 실제로 고장난것을 고친것에 기뻐서 흥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만 다른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영화의 맨마지막에 인류의 생존을 위한 방법으로 지하갱을 파야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일부다처제를 해야겠다며

위기의 순간에도 수뇌부들은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기도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모든 일들은 남성의 주도하에 이루어졌고,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 현실 그대로 담는것이 그 자체가 부조리하기 때문에, 문제점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때가있다.

이때 감독이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는건지 아니면 아무생각없이 현실을 담은 것인지 궁금해진다.


모두까기 인형인 감독이 이마저도 계산한, 팩트폭력한것인지 ㅎㅎ 아니면 내가 과장해서 해석한것인지 궁금하다.


 

 "여러분, 이 안에서 싸워선 안되오, 이곳은 전쟁 지휘소란 말이오!"(전쟁의 방 - 직역)

("Gentlemen, You can't fight in here, this is the War Room!")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배우들의 연기였던것 같다.

등장인물 모두가 제대로 된 인간이 없는데, 이들을 과장되면서도 개성있는 연기로 느낄 수 있어서 재밌었다.

특히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피터 셀러스'의 씬 대부분은 즉흥연기였다고 해서 놀랐다. 

친구에게 1인 다역을 하는 배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열심이 유추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었다.



소련과 미국의 소통부재에서 보이는 상호 불신과 음모가 어떻게 상황을 악화시키는지.

너 죽고 나 죽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상황대응이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써왔는지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을 보며 실실 웃은 것과는 별개로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잘못된 신념을 가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었고,

 또 그들이 결국 인류역사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이 무섭기도 했다. 


이런게 바로 블랙코미디구나,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