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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일반 소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올리버 색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나 <셈을 할 줄 모르는 까막눈이 여자> 와 같은 시리즈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장을 넘겨서 책이 소설이 아닌 걸 알았을때 조금 당황했다.

신경정신과 의사가 자신이 진찰한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게 왜이리 유명하고 평이 좋은거지? 싶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은 단순히 병을 가진 환자들의 진찰기록이 아니다. 작가는 서문에 단순히 병을 진찰하고 진단명을 내리는 행위를 비판하며 병을 이해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려면 환자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들이 어떤 성장과정을 겪었고 어떻게 병을 얻었으며 어떤 노력을 하며 이겨내려고 하는지,  '이야기'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며 이 모든 이야기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휴머니즘이 이 소설이 발간된지 오래됐음에도 지금까지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된 것이다.

 

의사, 특히 신경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왠지 딱딱한 이미지들이 연상된다. 지금에도 이런데 발간된 1985년도에는 어땠을까. 책을 읽으면 작가 자신의 의견이 당시 분위기와 얼마나 상반되는지 스스로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때까지는 뇌기능장애에 대한 인식도 별로 없을때였고 특히 기존 연구는 좌반구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것이 얼마나 편향된 것인지 우반구 손상에 인한 환자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안면인식장애나 단기기억상실증, 환청이 들리는 사람 등 지금에야 여러 미디어의 소재가 되어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이 장애가 뇌의 어떤 부분 때문에 발생했는지 파악되지 못하고 전세계에 몇명이 이런 장애를 겪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작가와 같은 의사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에와서야 익숙해 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이 환자들이 너무나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다가 장애를 안게 되고 또 그렇게 장애를 안게 되면서도 인간임을 놓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연속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영혼을 잃어버린 것 처럼 보이지만 정원꾸미기 등의 예술과 성당에서의 평화로운 모습을 통해 그도 감정, 의지, 감수성을 갖고 있는 인간임을 보여주는 모습 등에서 환자들에게서 존엄성에 대한 어떤 숭고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수평이 고장나 삐뚤게 걷는 환자가 이를 극복할 안경을 만들게 되는 사연 등을 통해 의사가 환자의 위에서 환자를 진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하는 사람이라는 작가의 사상이 인상깊기도 했다.

 

물론 의사가 쓴 저술이기 때문에 여러 뇌의 기능과 작용을 설명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작가의 따뜻한 시선때문에 더욱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문학이 아님에도 이렇게 감성적일 수 있다니, 너무나 놀라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