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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처연한 성장동화 <슬로우 웨스트(Slow West, 2015)>


'서부극'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카우보이 모자와 총싸움, 말을 타고 질주하는 건조한 사막.


하지만 <슬로우 웨스트>는 서부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모두 날려버린 영화였다.


실제 촬영장소가 미국 서부가 아닌 뉴질랜드여서 그런가?

빼어난 풍경과 아름다운 색감.

그리고 야만적인 서부를, 사랑을 찾아 가로지르는 소년.


총과 죽음이 만연한, 무질서한 미국 서부가 배경이라는 점에서

기존 서부극의 삭막함과 건조함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지만,

순수함을 지닌 소년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처연한 성장동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줄거리


19세기 서부개척시대. 16살 소년 '제이'(코디 스밋-맥피)는 

아버지와 함께 서부로 떠난 여자친구 '로즈'(카렌 피스토리우스)를 만나기 위해 

스코틀랜드에서부터 미 중서부인 콜로라도까지 머나먼 길을 혼자 찾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현상금 사냥꾼 '사일러스'(마이클 패스벤더)를 만나게 되고,

사일러스는 돈을 좀 주면 로즈에게 무사히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로즈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 있고, 

설상가상 현상금을 노리는 사냥꾼들이 몰려들게 되는데...


스포 O



"삶은 살아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일러스와 제이는 극 중 악당 페인이 천사와 악마라고 비유한것처럼 정반대에 서있는 인물들이다.

늑대굴 속 토끼인 제이는 오직 사랑을 찾아 혼란한 서부를 홀로 가로지르고 있다.

반면 사일러스는 끝까지 살아남은, 위험한 무법자이다.


사일러스는 로즈의 현상금을 차지하려는 목적으로, 이를 숨기고 제이와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제이와 정이들지 않도록 밀어내고, 제이의 순수함을 비웃는다.


그러나 스웨덴 강도부부 일화를 보면, 사일러스도 마냥 인간성을 잃은 악마는 아니었다.

흔들리는 눈빛과 꽉 쥔 손. 

제이의 말대로 외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사일러스는 제이를 결국 인정하게 된다.



"사랑은 죽음처럼 보편적이죠."


<슬로우 웨스트>는 대사가 많거나 에피소드가 많은 류의 영화는 아니었다.

소년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아기자기한 동화같은 느낌도 아니었다.


스토리보다도 연출이 눈에 띄는 영화였다.

사물과 사람을 사선으로 배치해서 깊이가 느껴졌고, 

밝은 색감과 아름다운 풍경을 보느라 러닝타임이 훅훅 지나갔다.

이와 대비되는 죽음이 만연한 배경, 그 속에서 묵묵히 사랑을 찾아 여정을 걷는 소년의 처연한 성장동화같았다.


한편, 원주민 학살과 더불어 쉽게 죽어간 모든 이들의 죽음도 신경써서 다룬다는 점에서,

결국 소년또한 그 많은 보편적인 죽음 중 하나가 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라는 것이 특별하다의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시말하면, 하나하나 특별한 죽음처럼 소년의 사랑도 보편적이지만 소중하고,

목숨까지 걸 수 있을 정도의 특별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영화는 동화적인것 뿐만 아니라, 신화적인 요소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슬로우 웨스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찾아보니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 영상이 있었다.

찾아보니, 역시 ㅋㅋㅋㅋ 알고봐야 더 많이 보인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영화 초반에, 제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를 찾는다.

그렇게 찾은 별자리는 오리온자리.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달과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는 아폴론의 꾐에 빠져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인 오리온을 화살로 쏳아 죽게 만든다. 


중간에 서로 화살을 쏘는척하며 장난쳤던 로즈와 제이.

영화의 마지막엔 결국 사랑하는 여자의 손에 제이는 죽게 된다.



영화의 결말엔 호불호가 많이 갈릴듯하다.

어떻게 보면 허무하게까지 보이는 제이의 마지막. 

로즈의 귀신같은 총실력도 조금 어이없는 부분이긴 했지만 ㅋㅋㅋ


클라이막스, 한곳에 모인 사람들의 총싸움과 그 속에서 오로지 사랑을 찾아 몸을 던진 제이의 모습에,

개인적으로는 여운이 남았다.


사일러스가 제이에게 동화되어 삶이 마냥 살아남는것만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도,

한 소년의 추락으로 다른 소년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 같아 인상깊었다.


한편, 로즈는 실제로 제이를 사랑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