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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재기발랄 컨닝스릴러 <배드 지니어스>


자국 흥행을 시작으로 아시아 박스오피스를 석권한 태국영화 <배드 지니어스>

한국에선 토르에 밀려 아쉬운 성적을 거뒀지만, 이렇게 묻힐 영화가 아니야! 괜찮은 영화라고 입소문이 났었다.

그래서 바로 찾아봤다! 보고나니, 과연 어째서 주목받고 흥행에 성공했는지 바로 이해가는 영화였다.

 

사실 컨닝이라는 소재가 참신하기는 해도, 과연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채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소재못지 않은 재기발랄한 연출이 돋보였다. 소재의 한계를 감독이 약간 멱살잡고 끌고 가는 느낌까지 들 정도 ㅋㅋㅋ



줄거리


천재 소녀 '린'은 똑똑한 머리로 명문사립학교에 무상으로 입학하게 되지만 가난한 형편에 아버지가 학교에 지원비를 가장한 

뇌물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회의에 빠진다. 그러던 중 시험을 잘 봐야하는 친구 '그레이스'의 컨닝을 도와주게 되고, 

이를 계기로 그레이스의 남자친구 '팟'을 비롯한 부자 학생들에게 돈을 받고 시험에서 답을 알려주게 된다.

컨닝 기술은 시간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린은 그레이스와 팟, 장학금을 받지 못한 모범생 '뱅크'와 함께

결국 유학을 가기위해 보는 국제시험 STIC까지 속일 천재적인 계획을 짜기 시작하는데...


스포 포함O



학창시절 시험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 긴장감과 불안을 이해한다면 이 영화 <배드 지니어스>를 공감할것이다.

밀폐된 장소에서 책상에 줄지어 앉아 펜을 굴리는, 다소 정적인 이미지가 얼마나 많은 긴장을 내포하고 있는지.

특히 컨닝이라는, 범죄라기엔 약하고 그렇다고 아니라기엔 엄청날 수 있는 부정행위가 주는 유혹과 쾌감.

영화는 이 시험장에서 펼쳐지는 컨닝을 참신하고 감각있는 연출로 스릴있게 채우고 있다.


영화의 첫 시험에서 린은 뒤에 앉은 그레이스를 위해 답을 적은 지우개를 신발에 넣어 뒤로 밀어보낸다.  

린과 그레이스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과 연신 선생님을 살피는 불안한 눈동자. 위기의 순간과 이를 헤쳐나가는 린의 임기응변.

딱 이 초반 폭풍같은 십오분에, 영화에 바로 빠져들게됐다. 

뒤에 나올 내용도 바로 이럴것이라고 주장하는 감독의 패기가 느껴졌다.



"근데 먼저 속이지 않으면 당하고 마는게 인생이야."


케이퍼 무비(Caper Movie). 범죄 전문가들이 모여 무언가를 강탈하고 절도하는 과정과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배드 지니어스>를 찾아볼때 가장 많이 눈에 띈 단어였다. 오션스 시리즈나 <도둑들>로 대표되는데,

<배드 지니어스>는 학생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범죄물과 캠퍼스물의 혼합이라는 색다른 맛이 있었다.


총과 칼이 아닌 '컨닝'을 다룬다고 마냥 가벼운 것도 아니었다. 가난한 학생이 '돈'을 위해 범법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학교교육과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무거운 면도 있다.


학교가 지원비라는 명목으로 받는 뇌물. 부잣집 아이들은 공부를 못해도 돈을 더 내면 된다.

막상 공부를 잘하지만 가난한 아이들은 장학금을 위해 경쟁해야 한다.

학교가 가르치는 것이 부정과 경쟁인 것이다. 


이 자본주의에 물든 청춘들. 린은 영화초반 부터 계속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매번 어쩔수 없다며 돈을 선택하게 된다.

점점 커지는 판속에서 잃고 있는 것도 커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채.



또 다른 주인공인 그레이스, 팟, 뱅크.


이들의 캐릭터성도 흥미롭다. 부잣집 아이들은 멍청하고, 가난한 아이는 도덕적이라는 약간은 1차원적인 구성일지 몰라도 

이들이 마지막에 가서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아니면 얼마나 여전한지를 보면, 좀 더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게 된다.


그레이스와 팟은 부잣집 아이들로, 공부를 못하는 만큼 많은 돈을 학교에 기부한다. 

이들은 해맑은 얼굴로 웃고있지만 주인공인 린에게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드는 존재들이다.

가난한 이들이 장학금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시험에서 성적을 내는 것만큼은 아닐지라도

이들에게도 높은 성적을 받아야할 절박한 이유들이 있다. 연극을 하기 위해서, 차를 얻기 위해서. 

이들은 가난해본적이 없어서 본질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가장 절박하다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회로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부정행위를 들켜 자숙하게 된 린에게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나 다음 시험 잘봐야돼...


특히 착하고 순진한 얼굴이 매력인 그레이스는 계속해서 린의 동정심을 자극해 잘못된 길로 빠지게 만든다.

맑다고 느꼈던 그레이스의 미소가 끝에가서는 얼마나 위선적이던지.

마치 자본주의의 달콤하면서도 매혹적인 민낯처럼 린은 계속해서 유혹에 넘어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린이 선택의 기로에서 수동적으로 선택에 떠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씁쓸하면서도 응원하게 되는 게,

나도 그녀와 같은 학창시절을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면 너무 올곧아서 고지식이기 까지했던 뱅크의 변화는 씁쓸함을 넘어서는 슬픔을 느꼈다.

린이 최후의 선택의 기로에서 그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하는 버전이랄까.



"그래 모든 건, 나한테 달려있어."


결말에 관해서는 너무 도덕적이고 급작스러운 것이 아닌가하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결말이었다. 


학교에서 부정과 경쟁을 배우고, 컨닝이라는 부정행위까지 저지르게 되었지만 결국 쉬운길이 옳은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린.

배드 지니어스가 정말로 '배드'한 결말이 되지는 못했지만 여운이 길게 가는 결말이었다.


영화에서는 총 세번의 시험이 나오지만 점차 진화해가는 컨닝 수법처럼 연출과 편집도 점차 쫀쫀해지고 긴박해진다.

그래서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태국영화는 <옹박>밖에 몰랐었는데 <배드 지니어스>를 보고 태국영화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알게됐다.

앞으로 영화를 고를때 선택할 수 잇는 폭이 넒어질 듯하다. 주목해서 지켜봐야할 감독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