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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패터슨> 일상 속 '시'가 된 영화


일상은 반복된다. 반복되는 시간은 차곡차곡 쌓이는게 아니라 포개져버린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는 것, 반복되는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것이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평이 좋아 정식개봉하길 손꼽아 기다려 드디어 본 영화. 이번에 보게 된 <패터슨>이 그런 선물 같은 영화였다.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사실은 마냥 똑같지 않고 미묘한 변화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변화를 발견하는게 소중한 일이란 걸 영화를 보며 깨달았다.



뉴저지 '패터슨'시에 사는 주인공 '패터슨'은 버스운전사이자 비밀노트에 시를 적는 아마추어 시인이다. 

그는 아름다운 예술가 아내 '로라'와 강아지 '마빈'과 함께 살고 있다.

영화는 그의 '일주일'을 따라간다. 특별한 일은 없다. 일상은 지루해보일정도로 반복된다.


아침 여섯시 반쯤 아내보다 먼저 일어난다 >>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고 출근한다 >> 운전을 한다.

 >>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틈틈이 시를 쓴다 >> 퇴근을 하고 '마빈'을 산책시키는 도중 바에 들러 맥주 한잔을 한다.


그러나 그의 일주일을 따라가다 보면 마냥 똑같은 일상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난 그는 잠에 취한 아내의 피부에 키스하며 매일 사랑을 깨닫는다.

버스 운전을 하면서 승객들의 다양한 대화를 엿듣는다. 아내가 원하는 기타를 사주고 그녀의 노래를 듣는다.

시인여자아이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불평이 많은 동료의 투덜거림을 들어주기도 한다.

아내의 강아지 '마빈'을 산책시켜주며 아마추어래퍼의 랩을 엿듣고 바에서 해프닝을 겪기도 한다.


 반복되는 일상은 알고보면 수없이 많은 디테일이 존재하고, 변주되고 있는것이다.



내가 먹어 버렸어

그 자두

아이스박스

속에 있던 것

아마 당신이

아침에 먹으려고

남겨 둔

것이었을텐데

미안해

하지만 맛있었어

얼마나 달고

시원하던지

(This is Just to Say   - William Carlos Williams)


주인공이 '시인'이라는 것은,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고 가장 알맞은 단어를 골라 운율에 맞춰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것은

이 영화 <패터슨>도 그런 영화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성냥으로도 '시'를 쓸 수 있고 그가 쓰는 '연시'는 모두 아름다운 아내를 향한 사랑이 담겼다. 


영화는 '시'가 된다.


주인공의 일과 뿐만 아니라 영화에선 반복되는 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들이 영화의 '리듬'이 된다.

그 반복되는 일상에서 톡 튀어나오는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패터슨의 일상은 운율이 되고 '시'가 된다.


특히 월요일아침 로라가 자신의 꿈에 쌍둥이가 나왔다는 얘기를 한 뒤, 패터슨의 삶 속에서 쌍둥이가 갑자기 등장하곤 하는데,

이를 패터슨과 함께 마주치고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똑같이 생긴 사람 둘을 예기치 않게 인식하고 발견하는 것. 

이 자체가 굉장히 예술적인 것 같았다. 



"아주 시적이에요." "글쎄, 그런 것 같진 않은데요." "맞아요, 이건 윌리엄스의 시가 될 수 있어요."


일상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것.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아름다운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가끔은 빈 노트가 가능성을 주죠."


평범한 패터슨에게도 위기가 찾아오기도 하고, 기적같은 만남이 찾아오기도 한다. 위화감이 느껴질정도로 딱 맞추듯 알맞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것.

이런 것도 일상의 기적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영화는 특별히 큰 사건없이 패터슨의 일주일을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지루하게 볼 수도 있을 것같다.

하지만 그 지루함 속에서 패터슨처럼, 놓쳐버릴 수 있는 것을 캐치하기 시작하면 굉장히 특별한 영화가 될 수 있는 듯하다.

'패터슨'시에 사는 '패터슨'이란 이름이 초반엔 지루함의 상징처럼 느껴졌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시'처럼 느껴진것과 같이 말이다.


+ 패터슨과 로라가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말'을 하는게 너무 이뻐보였다. 결혼을 한다면 이런 결혼생활을 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분명 잔잔한 영화임에도 나는 실실 웃으며 봤다. 일상을 예술로 만들어버린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