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머니볼> 홈런을 치고도 1루로 내달리는 것.


친구가 재밌다고 추천해서 보게 된 <머니볼>. 

사실 보려다가 한 번 실패하고, 한참이 흐른 지금에서야 제대로 보게 된 영화다.


야구 문외한이라 야구를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기도 했고,

'스포츠 영화'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적과 사람냄새 풀풀 풍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반대로 숫자와 통계로 야구를 분석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선인과 악인의 대결이라는 이야기 구조에서 항상 주인공의 반대편이었던 입장이

 <머니볼>에서는 주인공 역할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 지루하기도 해서 졸기도 했고...


그러다가 연말에 볼 영화가 없나 폴더를 뒤지다가 다시 보게 된 <머니볼>.

희한하게 이번에는 집중해서 제대로 봤다. <머니볼>이 단순히 야구영화만이 아니라 인생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줄거리


메이저리그 만년 최하위에 그나마 실력있는 선수들은 다른 구단에 뺏기기 일수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돈 없고 실력없는 오합지졸 구단이란 오명을 벗어 던지고 싶은 단장 '빌리 빈(브래드 피트)'은 경제학을 전공한 '피터(조나 힐)'를 영입,

기존의 선수 선발 방식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머니볼' 이론을 따라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는 경기 데이터에만 의존해 사생활 문란, 잦은 부상, 최고령 등의 이유로 다른 구단에서 외면 받던 선수들을 팀에 합류시키고

모두가 미친짓이라며 그를 비난한다. 과연 빌리와 애슬레틱스 팀은 '머니볼'의 기적을 이룰 수 있을까?



주인공인 빌리 빈은 과거에 장래가 촉망받는, 유명 구단들이 눈독들이는 선수였다.

하지만 유명대학의 장학금을 포기하고 메이저리그에 뛰어들었으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전전하다가 결국 선수에서 스카우터로 전향한다. 


때문에 그는 스카우터들이 선수의 실력과 가능성에 대한 정확한 파악없이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에 분노한다.

그러던 중 경제학자이자 통계로 야구를 분석하는 피터를 부단장으로 영입하면서 구단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꾼다.


지금에 와서야 머니볼 이론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야구계에서 어느정도 인정하지만

빌리 빈의 성공 전에는 수학과 통계로 야구를 진단하는 것은 야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 봤다.

때문에 빌리 빈과 피터의 방식은 기존의 스카우터들과 감독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비판을 받고 충돌을 겪는다.


하지만 빌리 빈은 자신의 방식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를 끝까지 밀고나간다.

여기에 <머니볼>을 단순히 야구영화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트라우마를 지닌 주인공이 주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믿는 신념을 관철시키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이야기.



숫자와 통계로 야구를 분석하는 방식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의 믿음은 과연 100% 굳건한 믿음이었을까?

야구를 모르는 '빌 제임스'가 만들어낸 이론.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캐스팅 후에도 경기는 계속해서 지게 되고,

그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안과 염려를 했을꺼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 경험과 직관에 의지하는 야구의 한계를 깨닫고 가난한 구단이 부자구단과 대결하려면

그들이 보지 못하는 곳을 보고, 꾀를 내어야 함을 통감한다.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야.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젠 이 방법을 믿느냐야."


사람이 살면서 하나의 신념을 가지기도 힘든데, 이를 모두가 안된다고 할때 밀어붙이는 것.

아니, 이전에 자신의 신념을 이렇게 굳게 믿는다는 게, 굉장히 대단해보였다.


그가 마지막에 거액의 제의를 거절하고, 자신의 방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구단에 남는 것에서 앞의 모든 것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영화는 선수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경기 뒤에서 구단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때문에 얼핏보면 제대로 된 야구영화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머니볼>은 제대로된, 야구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주인공 빌리 빈은 선수로 실패를 경험했으나 여전히 야구를 사랑하며 단장으로 남아있다.

나이, 외모, 성격 때문에 좌절했던 선수들은 빌리 빈에 의해 야구를 계속할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머니볼>은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야구계의 뒷면을 과감없이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선수들은 값이 매겨져 트레이드되고, 영화는 철저히 '돈'으로 굴러가는 구단의 생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머니볼>에는 야구에 대한 사랑이 가득 들어있다.

수학과 통계를 따져 야구를 분석해도 야구는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가득하고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이런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을 영화는 계속해서 말한다.

야구를 전혀모르는 나까지도 야구에 애정이 들게 만들정도로.



피터는 홈런을 치고도 1루로 내달리는 선수를 보여주며 자신이 이뤄낸 업적을 돌아보지 못하고 계속 자신을 채찍질하는 빌리빈을 깨닫게 한다.

이장면은 초반의 "자신이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우린 놀랄만큼 무지하다"는 말과 대치되면서 영화가 가장 말하고자 하는 바 같았다.

영화를 보며 나도 내가 친 홈런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굳건한 믿음을 가졌음에도 어쩔수없이 흔들리고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하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딸이 부르는 'the show'는 말한다. 그런 자신감없는 아빠는 루저라고. 그냥 즐기라고.

딸의 노래가 울려퍼지며 클로즈업되는 브래드피트의 표정에서 큰 여운을 느꼈다. 


+ 한편 영화에서 조금 아쉬운점들이 있었다.

빌리 빈은 '출루율'을 굉장히 중시하면서 얼핏 자질이 부족해보이는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이 출루율이 왜 중요한건지

야알못인 나에겐 조금 이해가 안가는 모습이었다.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


더해서 빌리 빈을 부각시키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왜곡시키거나 극단적으로 표현된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실제 사실을 몰랐어도)

찾아 보니, 극중에서 크게 대립했던 스카우터는 빌리 빈과 마찰을 겪은 건 사실이지만, 구단을 이끈 훌륭한 선수들을 발굴해낸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선 빌리 빈을 방해하며 무능력해보이기만 했다. 감독 또한 빌리 빈의 계획을 끝까지 따라주지 않으면서 갈등을 빚게 되는데,

영화를 보면서도 빌리 빈이 오히려 감독의 권한을 침해하는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빌리 빈의 업적을 기리는 영화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각색했다고 이해할 정도이긴 했다.



아구 경기의 비중이 큰 영화는 아니지만, 실제 경기장면을 슬로우장면으로 보여주거나 전화로 다른 구단들과 눈치게임을 벌이며 선수를 영입하는 장면은

스포츠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심장쫄림과 카타르시스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굉장히 신선했다. + 브래드피트의 먹방을 보는 재미도 있었고!


야알못이지만 야구영화로서도 훌륭하고, 인생의 철학을 담아 깨닫는게 많았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