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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일반 소설

머큐리 - 아멜리 노통브



<적의 화장법>, <살인자의 건강법>에 이어 세번째로 읽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역시 아멜리노통브 소설답게 광기어린 핑퐁대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전 소설들이 등장인물의 입담에 이입되어 휘둘러지는 반대쪽 인물을 보고 통쾌함을 느꼈다면

 이건 오히려 반대쪽에 이입되어 속터지는 쪽? ㅋㅋㅋ


30세의 간호사 프랑수아즈는 〈죽음의 경계〉라 불리는 외딴 섬에 파견 근무를 나가게 된다. 그곳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녀 하젤이 팔순이 다 된 추악한 늙은이, 롱쿠르 선장과 묘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거울을 비롯해 모습을 비추는 물건의 반입이 일절 허락되지 않는 이상한 섬, 눈부시게 아름다우면서도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하젤, 프랑수아즈는 노인과 양녀 사이에 어떤 비밀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챈다. 섬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노인의 거짓으로부터 프랑수아즈는 하젤을 구하려 하는데... (구글도서)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영화 <아가씨>의 원작인 <핑거스미스>가 있기 전에 바로 이 소설 <머큐리>가 있다.

어떤 장소에 갇혀 억압된 여자를 또 다른 여자가 그 곳으로 들어가 구원한다는 스토리라는 점에서 굉장히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프랑수아즈와 하젤의 관계를 그렇고 그런 사이로 해석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ㅎㅎ


머큐리는 잠깐 짬날때 맛만 보자고 훑었다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소설이다. 짧기도 하지만 그만큼 흡입력이 엄청났다.

우선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답게 거의 전반이 대화로 이루어져있고, 이 대화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광기를 지녔다.

특히 섬의 외부인인 프랑수아즈와 노인인 롱쿠르 선장의 대사가 굉장히 인상깊다.


한쪽은 추하고 늙은 자신이 아름답고 어린 소녀를 탐하는게 정당하다고 말하는 입장, 

그리고 반대쪽인 프랑수아즈는 읽는 이들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런 선장을 비난하는 입장이다.


(프랑수아즈의 팩폭이 굉장히 인상깊어서 책갈피하며 읽었다ㅋㅋㅋㅋㅋㅋ 몇개 적어본다.)


"처녀의 순결을 마치 전리품인 양 말하는 그 수컷들의 방식이 전 늘 의아했어요. 살육한 맷돼지와 사슴의 머리를 자랑스레 벽에 걸어 두는 사냥꾼처럼 당신은 당신이 순결을 빼앗은 처녀들의 음모라도 꽂아 둬야겠군요."


"세상 모든 남자들처럼 당신도 모든 여자들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려는 거로군요. 참 이상해요. 사람들은 여자란 무릇 젊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 문제가 될 때는 그런 디테일은 무시하라고 충고하죠."


물론 강압적인 관계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하젤을 감금하고 그녀에게 거짓을 말했다는 점에서 

선장은 윤리적 잣대에서 비난받아 마땅하고, 나도 프랑수아즈 입장에서 열불이 터져 죽을 뻔했다.

하지만 짜증나는 건 선장이 온갖 감언이설로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피력하는데, 

핑퐁대사를 읽다보면 흠칫하고 그의 말에 공감이 갈것 같기 때문이다.(절대 이해하진 않는다.)


그래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프랑수아즈의 팩폭에 그때그때 맞춰 자신을 포장하는 말에 지나지 않고 

앞뒤가 모순되는 말들이기 때문에 물론 선장이 짜증나는 마음이 컸다.


더 이해가지 않는건 마지막에 하젤이 비밀을 알고 나서도 선장을 두둔한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을 잘 모르기때문일까, 아니면 5년동안 감금되어 책만 읽었기 때문에 사랑을 꿈꾸는 공상이 크기 때문일까.

선장을 용서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사랑때문에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하젤.

자신의 얼굴이 흉하다고 알았을 때는 노인을 고마워하면서도 역겨워하다가 

자신이 아름답다는걸 알았을땐 오히려 아름다움의 덫에 빠져서 노인의 사랑에 공감을 하다니 ...ㅜㅜ


앞서 프랑수아즈를 대하는 하젤의 태도를 보면, 그녀도 그런 광기어린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선장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가 싶었다. 다시 읽으면 하젤이나 선장이 이해가 갈까? 아직은 화를 내는 프랑수아즈처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두가지 결말에 대해서도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선 결말은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주인공들이 고난끝에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걸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두번째 결말은, 도대체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쓴걸까 고민이 됐다.

어떻게 보면, 하젤이 꿈꾼것과 같이 프랑수아즈도 앞과 같은 결말을 맞이했기 때문에, 

두번째 결말도 맞이 할 수 있었던것 같다. 결국 사랑의 광기를 몸소 실천하며 이해한 프랑수아즈...

하젤이 읽는 책 속의 세계처럼 과장되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같았다.


섬의 외부인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참 프랑수아즈에게 많이 이입되었는데

처음엔 답답하게 구는 하젤을 도대체 프랑수아즈가 왜 구하려 하는 걸까 의아했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때문이라고 하니,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움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론, 참 귀엽다고 생각했던 프랑수아즈와 하젤의 대사.


"내 눈동자를 봐요! 자세히 보이진 않겠지만 당신이 괴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거에요."


하젤은 홀린 듯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눈동자가 정말 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