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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낡은 양말 한 쌍처럼 <내사랑(Maudie, 2016)>



샐리 호킨스, 에단 호크 주연의 <내사랑>을 봤다.

<내사랑>은 나다 민속 화가 '모드 루이스'를 다룬 실화 영화다.


원제 <Maudie>. 제목 번역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사전정보 없이 본다면 애틋한 멜로영화로 오해해서 나처럼 뒤통수 맞을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절대 알콩달콩, 아련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모드의 그림과 삶을 다루고 있는데, 사랑을 굳이 언급하자면

'사랑'이라 말하기에도 거창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실적이고 소박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순응하는 사랑.



몸이 불편한 '모드 (샐리 호킨스)'는 오빠에게 외면받고 숙모 집에서 살고 있으나, 천덕 꾸러기 신세다.

모드는 이런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괴팍하고, 숫기없는 생선장수 '에버랫(에단 호크)'의 숙식 가정부로 들어가게 된다.


에버랫은 말라깽이 장애인 모드를 무시하고 함부로 굴지만, 

모드는 악착같이 붙어있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시간히 흐르면서 조금씩 에버랫과 모드는 스며들고, 모드의 그림도 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하는데...



스포 O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에버랫'은 괴팍하다. 사람을 싫어하며 욱하는 기질도 있는 캐릭터다.

그래서 영화 내내 모드와의 관계도 약간은 폭력적이고 강압적이다. 

가정부로 들어가게 된 '모드'를 시종일관 무시하고 자신보다 서열이 밑에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각인시킨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초반에는 너무 놀랐다. 공감성 수치를 자극하는 내용에, 계속 보지 못하고 한참을 쉬었다가 봤다.

모드가 모욕을 당할때는 눈물이 나기도 했다. 어떻게 될지 두고보자며 이를 갈기도 했다 ㅋㅋㅋ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도 이들의 관계가 드라마틱하게 변하진 않았다.

실화영화라서 그런걸까? 아니, 그렇게 따지면 영화가 조금 더 드라마틱한걸수도.

몸이 불편한 모드가 혼자서 걷는 장면에서 모드가 탄 수레를 에버랫이 끄는 장면까지.

여전히 성격은 변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에버랫의 옆에 천천히 모드의 자리가 생긴다.


이쯤되니 <내사랑>이란 제목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ㅋㅋㅋㅋ



"낡은 양말 한 쌍처럼."

"한 짝은 다 늘어나고, 한 짝은 구멍 잔뜩나고?"

"아니에요. 하얀 면양말."


에단 호크와 샐린 호킨스의 연기력도 말하지 않으면 안될것같다.

샐리 호킨스는 <패딩턴>과 <네이든>에서 엄마역할으로, 다정한 소시민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는데,  

<내사랑>에서는 숫기없으면서도 할말다하고, 순응하면서도 나름 현명하게 에버랫에게 맞춰가며 살아가는 

실제 인물 모드를 연기한다. 실제 '모드 루이스'의 사진을 보니 그 수줍은 미소가 얼마나 똑같던지 놀랐었다.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지 몰랐는데 ㅜㅜ 찰나에 변하는 표정을 보고 있으면 정말 세심한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언니의 개봉 예정작 <물의 형태>도 진짜진짜 기대하고 있다...


에단호크는 내 기억속에 미성의 목소리를 가진 미청년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늙었는지...

하지만 <타임패러독스>, <본투비블루>, <매기스 플랜> 등 작품선택을 굉장히 잘하고 있어서 여전히 멋있어 보인다.

<내사랑>에서는 고아원에서 자라 거칠게 살아온 중년남성을 진짜 현실감있게 연기하는데,

기억속의 미성이 아니라 낮고 거친 목소리여서 조금 놀랐다ㅎㅎ 아마 연기인거겠지?

숫기 없어 흔들리는 동공, 갑자기 욱하는 성질머리. 진짜 실제 중년남성같아서 ㅋㅋㅋ 연기 잘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모드 루이스'의 사진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그녀의 알록달록한 그림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영화에서는 이웃인 '산드라'가 그녀의 그림을 발견하고 꽃피울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산드라와 모드의 우정도 영화에서 좋았던 점 중 하나였다.

고급스러운 말투와 쿨한 성격의 멋있는 캐릭터였는데, 

산드라와 함께 있으니 모드의 천진난만함과 다정함이 돋보였고, 그림에 대한 열정을 더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인생 전부가 액자 속에 있어요."

 "바로 저기."


영화의 후반부에 갈수록

분명 내가 다 상처받을 정도로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였는데... 완벽하지 않은 사랑이야기였는데...

결말의 에버랫의 모습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림을 팔아 돈을 벌어도 그 작은 집에서 소박한 삶을 살았던 모드와 에버랫.

개보다 못했던 모드가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까지. 

주름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흘러가서인지 너무 감동적이었다.

분명 에버랫의 괴팍한 모습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으나, 

영화가 전혀 미화하지 않고 이런 사랑도 있다는 듯 담고 있어 괜찮았다.

그 어떤 거친 남자도 사랑앞에선 변하는 구나 싶었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았던 영화 <내사랑>. 완벽하지 않은 사랑이야기.

나중에 한번 더 재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