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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한 여름, 소년의 첫사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한 여름 뙤약볕 아래 셔츠와 짧은 반바지, 한적한 마을을 돌아다니는 두 사람.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도 80년대 이탈리아 북부의 여름이 계속해서 뇌리에 남을 것 같다.


아카데미 4개 부문 노미네이트, 각색상을 수상하고 관객들에게 높은 평점을 받고 있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아미 해머'와 '티모시 샬라메'라는 두 배우의 미모가 눈을 즐겁게도 했지만 영상과 음악이 뛰어난 영화였다.


또한 서툴지만 풋풋했던 소년의 첫사랑을 담은 만큼 그때그시절 나도 그랬었지,하며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깊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한편으론 퀴어영화로는 겨울하면 <캐롤>, 여름하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떠오를 것 같았다.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1983년 이탈리아. 열 일곱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는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족 별장에서 

여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오후, 스물 넷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가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찾아오면서 그 여름이 특별해지는데...

엘리오의 처음이자 올리버의 전부가 된 그해, 여름보다 뜨거웠던 사랑이 펼쳐진다.


스포 살짝



영화는 굉장히 세심하고 느리게 진행된다. 처음엔 영상음악화보집을 보는줄 알았다.

엘리오가 언제 올리버에게 마음이 생겼는지, 올리버가 엘리오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카메라가 직접적으로 보여주진 않는다.

다만, 이탈리아 북부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조망하면서도 문득문득 인물들의 표정이 놓치기 쉽게 지나간다.

특히 올리버를 따라다니는 엘리오의 눈빛. 그 불안한 시선.


동성애가 조롱받고, 심하면 정신병원에 끌려갈수있는 시대.

소년에게 처음 생긴 이름 모를 감정. 그것도 처음 본 낯선 타인, 같은 동성에게.

가족이 친하게 지낸 지인인, 동성커플을 초대하면서, 소년은 이들을 내심 조롱하고 무시하지만 내면엔 그들처럼 무시받을거라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리버에게 어쩔 수 없이 끌리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할지, 자신과 같을지 소년은 밤을 새며 고민하고 불안해 한다.



영화를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앞서 말했듯이 영화가 인물들의 심리를 극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세심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에

초중반에는 인물들의 감정선이 잘 이해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특히 올리버!


엘리오의 고백 이전에는 올리버의 시점이 거의 전무하다싶이 나온다. 엘리오 조차 올리버가 어떤 생각인지 몰랐다고 고백할 정도로.

이 대사를 보면, 감독이 의도했다고 할 수 있을 것같은데, 

그럼에도 엘리오가 고백을하고 올리버도 같은 심정이었다고 말할때는 아니 얘네 언제 그런 감정을 느낀거야? 싶었다.


여하튼 가까워졌다 싶으면 다시 멀어지면서 엘리오의 애간장을 태우더니 사실은 올리버 또한 엘리오에게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두둥!

두 사람은 이러면안돼, 하다가도 그들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서로에게 이끌리게 된다.



엘리오와 올리버


영화는 많은 부분 엘리오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것같지만 간간히 올리버의 불안한 표정을 짚어 주기도 한다.

엘리오에게 자신이 처음이기때문에, 자신이 그를 잘못된 길로 이끈것일까 하는 불안, 엘리오에게 자신이 단순히 불장난일까 하는 불안.


영화를 다 보고나서는 어쩌면 버림받은 엘리오가 불쌍하다고 여겨질테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정말로 안타까운건 올리버가 아닐까 싶다.

소년에게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가족이 있지만 보수적인 유태인 집안의 올리버는 그럴 수 없을 테다.

어쩌면 엘리오에게 올리버는 아련한 첫사랑으로 남고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테지만, 올리버에게 그럴기회란 없을 것이다.


포스터 글귀처럼 엘리오에겐 처음이지만 올리버에겐 전부가 될 그 시절 여름.



영화를 보면서 또 한 가지 인상깊었던 점은 엘리오의 가족이었다.

엘리오에게 책을 읽어주는 어머니와 아버지.

특히 실연을 당한 엘리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지금의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조언해주는 아버지는 판타지스러울정도로 바람직한 이상향이라

나도 저런 부모가 있었다면, 하는 부러움이 들기도 했다. 


한편 영화 후기를 보면 간간히 보이는 여혐 논란에 관해서는 살짝 의문이 들기도 했다.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끌리면서도 이성친구와 어울리기도 한다. 소년이 겪는 성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올리버또한 2년 내내 헤어졌다 만났다, 하는 약혼자와 마지막에 결혼을 하기도 한다. 아버지도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고.

이것이 퀴어영화에서 그들의 혼란과 사회적 외면을 말해주는 장치로 당연히 등장하는 요소라고 볼 수 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선 그들의 '게이 판타지'를 보여주기때문에 불편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아련한 첫사랑의 슬픔이 있지만 여자에게도 인기 있는 '나'. 그를 많이 사랑했지만 사회적시선 여러 장애로 어쩔 수 없이 헤어졌었지 아련아련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캐롤도 남혐영화인가?? 싶기도 하다. 영화자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참 여러 시선이 있는듯.



2시간의 여름과 10분의 겨울


10분의 묵직한 여운때문에 2시간의 여름이 아련한 추억이 되는 듯하다.

티모시 살라메의 억누른 감정연기가, 어째서 그가 핫한 신인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아름답고, 애틋했던 그 여름. 소년은 아픔을 딛고 성장하겠지.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였다.